내가 미쳤다는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이게_뭔_개소리야

내가 철학과에 왔을때 갖고 있던 생각들에 대해 문득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20살 1학년생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잊고 있었는데 갑자기 생각이 떠올라서 매우 반갑다. 신입생이라면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을 것이다. ‘너는 왜 철학과에 왔는가?’ 나는 지금도 단언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다른 생각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나는 여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사파적 기원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나는 일반적인 유년 시절을 보내지 않았다.

이것에 대해 긴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간단하게 정리하는데, 그냥 싸이코였다고 봐도 무방하다.

내가 하고 있던 생각들을 지금의 기억으로 되짚어보건데

1. 첫째는 “나의 실존”이다.

이 생각을 한 지는 매우 오래되었다. 왜냐하면 내 최초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이를 알 수 없는 때(나는 무조건적으로 다섯 살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세 살일수도 있다. 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자아”를 인식한 것 같다. 첫 기억은 다음과 같다. 내가 황토색 장판 위에 앉아있고 앞에는 장롱이 있었다. 장롱은 아마 갈색이었다.(여기서, 내 기억이 얼마나 조작되기 쉬운지 실감한다. 나는 방금 전만해도 그것을 훨씬 이후에 산 청록색-흰색 패턴의 옷장으로 바꾸어 생각하였다.)

그 때 나는 최초로 생각하였다. 그것은 실존을 느낌에 가깝기 때문에 언어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마치 이런 느낌이랄까,

내가 왜 여기 있지/ 내가 왜 눈을 뜨고 있지/ 눈은 왜 사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보고 있는 거지/ 왜 나만 여기서 눈뜨고 생각하고 피부로 느끼고 몸을 조작하는 걸 뇌속에서 느낄 수 있는거지/ 왜 나는 방 밖에 있는 형이나 부모님이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을 느낄 수는 없는거지/ 세상에서 하필 나만이 이런 것인가/ 신한테 선택받았는가/ 저기 움직이는 것들은 기계 같은 것은 아닌가

돌이켜보건대 이러한 느낌은 나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주었다. 여덟 아홉살때의 나는 만화적인 구성에 너무 빠져 있었는지(그렇기에 나는 뽀로로를 많이 보여주는 것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잘 모르겠다.) 검은 차량들이 지나갈 때마다, “나를 (악당 또는 검은 썬글라스를 쓴 양복쟁이들이) 감시하고 있는거야..!”라는 상상을 해보고는 했다. (그리고 만화의 마지막 장면 : “과연 윤재현은 악당들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와 페이드인 되는 하단의 아티스 운동화 광고) 이런 상상은 스스로가 특별하다는 가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아, 내가 이 상상을 현실로 전도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가 아무리 어렸어도 상상은 상상이었을 뿐)

이 “최초의 생각”이 얼마나 나에게 약을 오래 팔았냐면, 7살때인가 9살떄인가 문득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생각하고

“나는 그때 느낀 그 충격을 온전하게 기억해야 돼! 그러려면 그 때 기억을 매년 억지로 회상해봐야 돼! 왜냐하면 내가 이 기억을 절대 안 잊을 줄 알았는데 오늘 문득 이 강렬한 기억도 까먹을 수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야! 잠이 오더라도, 위급한 순간-이를테면 눈높이 답지를 배끼고 있더라도- 기억 해야 되어!”

라고 잠자려고 누워 있다가 생각하였고, 실제로 매년, 또는 격년으로 이 생각을 회상하였다.

철학과에 온 것도 이러한 동기가 없었다면 결코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새내기세미나” 라는 1학년생 수업에서 각자가 철학과에 온 이유를 이야기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나 혼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비 교주같은 소리를 하고 말았다.(자리가 붕-뜨는 느낌을 받았었지만) 그래서 입학하자마자 찾은 게 이해도 못하는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던지 버클리 말처럼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물론 의지도 없고 게으르고 겉멋만 들어 있던 나는 실제로 책을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다. 쇼펜하우어 책을 이해가 안 되어 노트에 정리하고, 그렇게 몇시간동안 읽은 게 두 장이었다. 그걸로 그때 내 노력은 끝났다.

하지만 지금도 이 생각은 내게 깊은 영향을 준다. 갑자기 당신이 나에게 와서 “야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냐? (손가락을 흔들며) 이게 몇개로 보여?” 라고 우스개로 만든다고 할지라도 떨치지는 못할 것이다. 아마 죽을 때쯤까지 기다려봐야 뭘 좀 알게되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나는 “타자와 의사소통되어 만들어진 내가 존재한다. 외부와 육체의 합작품인 감각이 존재하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치이다.”라고 나를 육체에 한정되지 않은 합의된 존재로 보는데, 이런 생각에 영향을 주었으면서 동시에 위협을 주는 내 생각의 근본적인 출발점이다.

2.두번째로 의사소통에 대한 생각들을 하였다. 철학과에서는 토론 수업은 무진장 많이 한다. 특히 일학년때는 거진 대부분의 과목이 그러하다. 첫 학기에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는 놈 취급을 받았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사람이랄까, 원천적인 거부감 속의 토론자였다. 그 때 했던 생각이 내가 A를 생각하고 “매체”를 통해서 말하면 Aa의 형태가 되고 이것을 청자가 들었을 때 A’a의 형태가 되고 그것을 청자는 다시 A’a’로 이해했다고 말하며, 이에 대해 다시 내가 말할 때는 방금 전에 했던 A와는 또 다른 생각A”을 하면서 이를 A와 같은 것으로 바라본다는 이러한 생각이었다. 물론 이것은 “나는 그저 성실하게 내 생각을 말했을 뿐인데 핀트없는 바보로만 듣고 있다”는 나름대로의 억울함 속의 항변이었다.

2학년 때부터는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통해 어느정도 전향적인 결론이 잡히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말은 알아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솔직하게 내 스스로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다. 대화란 어떠한 약속 위에서 해야되고 이것이 일관성이다. 흔히 핀트라고 이야기하는 논쟁의 초점이나, 주장의 불변성이 이러한 것들일 것이다. 일관되지 않으면 듣는 이는 나와 대화를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하기 위해서라도 스스로에게 진솔함을 희생하여서라도 일관된 이야기를 하여야 한다. 이것이 내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내 입장 네 입장이 있기 전에 이야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오늘 블로그에 이러한 글을 쓰게 된 것은 게으름 때문이란 것을 밝힌다. 나는 고쳐야 되는 글이 있으며, 영어 공부도 해야 되고, 제작한 영상도 뜯어고쳐야 되며(토론 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해 보고 있다.), 다음 토론 영상의 주제인 “퀴어퍼레이드의 노출, 과한 것인가, 과하지 않은 것인가”에 대해서 주장하기 위해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어 보기도 해야 되었다. 하지만 광기의 역사를 읽다가 예전에 끄적인 Aa -> A’a같은 낙서(2번 생각의 그것)를 발견하였고,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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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광기의 역사>(김부용 옮김)는 1학년 겨울방학에 수능공부하듯 열심히 읽었다.(아마 부모님은 매일 5시에 일어나서 어딘가를 나가니 ‘뭘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갈 하고 있긴 하나보네’하고 좋아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놓고도 3-4부 정도 까지밖에 못 읽었다. 하루 내내 눈을 부릅뜨고 읽어도 10장 20장 채 못읽고 책만 침에 불어나게 만들기는 했다. 이때 토익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광기의 역사는 사실 위의 1번 2번의 생각에 대하여 고민해보기 좋은 주제를 갖고 있다. 본인 스스로가 갖고 있는 세상과 양립하지 못하는 광기에 대해서 고민해보기 좋은 책이고, 광기와 이성의 말 같지 않은, 벽보고 이야기하는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기 좋은 지점들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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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qua DC – DC Gay Pride Parade 2012 (7356274060)” by Tim Evanson, Licensed under CC BY-SA 2.0 via Wikimedia Commons – https://www.flickr.com/people/23165290@N00

그리고 퀴어퍼레이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사실 퀴어퍼레이드에서 때때로 볼 수 있는 용납되기 힘든 복장 및 미친짓들은 사회에 본질적으로 존재하는 광기의 표출이라고 생각한다. 사회계약론이 과거 대두되었던 것에서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현대사회는 개인이 모여서 만들어진 합의물로서의 사회라는 인식 위에 있다고 생각이 든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대화이전에 언어를 선택하는 내가 있는 것이 아니고, 태어나자마자 특정 국적, 특정 언어가 강제되는 내가 있는 것처럼 사회는 폭력적, 강제적인 부분이 존재한다. 모든 축제는 이러한 일상에서의 일탈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미친 짓이 있어야만 축제가 되고 미친 짓을 보러 축제에 가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적인 대화의 현장이 아니다. 광기가 스스로의 실존을 드러내는 아바타이다. 아무도 동네에서 보는 것과 똑같은 것을 보러 축제에 가지는 않는다. 축제에서는 모두 앞을 알 수 없는 암흑, 일탈, 미친 짓을 기대한다.

한편 퀴어퍼레이드라는 소수자의 축제는 정기적으로 특정한 장소에서 일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합의한 결과물이기에 “합의된 광기”이다. 대화는 “표준”위에서 가능한데, 이것은 소위 말해지는 “이성”또는 “다수자의 길”이다. 광기또한 일방적인 외침이라 하더라도 “대화”의 형식을 통해 “말은 안 통하지만 한번 들어보자”의 형식으로 밖에 존재할 수 없는 모순 위에 존재한다. 모순은 광기 스스로의 본질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퀴어 축제는 일반적일 수 밖에 없기도 한다. 일반적이지 않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반적이어야 하고, 일반적임이 감출 수 없는 일반적이지 않음으로서 축제는 스스로 모순덩어리이다. 그래서 퀴어퍼레이드의 문화의 과단성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너무 어렵다. (이는 넓은 의미에서 퀴어퍼레이드 뿐 아니라 뉴라이트, 어용단체, 진보세력, 빨갱이, 어머니들, 종교단체 모두의 집회 및 축제에 적용 가능하다.)

산 위에서 소리지르기.

예전에 신입생 시절에 중국에 간 적이 있다. 무슨 신입생 단기 교환학생/어학연수 프로그램이었다.

흔한 대학교 국제협력처 프로그램들이 다 그렇듯이(우리 학교만 그런 것이 아니고 대다수의 학교가 그렇더라.) 학생을 조금 더 저렴한 가격에 해외에 보내는 것만 신경쓰고, 학생이 해외에 가서는 무엇을 하는지 형식적인 보고서만 제출하면 되는 예산낭비프로그램이었다. 아무튼, 가서 왠지 모를 우울함에 빠졌다.

그래도 핵심은 기억한다. 그 때 느꼇던 것의 핵심은, 낮선 땅에 가는 것이 낮선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일상으로 빠지는 것이라는 것이다. 새로움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 그 공허함은 세계 여행의 로망에 빠져 있던 내게 나름 큰 충격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경험 에서부터 일상적인 것에 침잠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시작된 것 같다. 캐나다에서도 그렇고, 뉴욕에서도 그렇고, 랜드마크를 찾으러 다닌 적이 없다. 허무할 것이 뻔하기에…

여행의 껍데기를 한 꺼풀씩 벗겨내어 보면 그 핵심은 “의미부여”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일상 또한 “의미부여”과정이다. 다만, 일상의 ‘의미부여’가 잠시 어려운 시간을 곀고 있을 때, 일상이 허무하게 느껴질 때,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의 본질로 직진해보는 것이 여행인 것 같다. 내가 여기 있음을 뇌리에 각인시킨다고 해야할까. 그런 의미에서 인생 전체가 여행이라 생각하고 살아야 되는 듯 보인다. 사실 둘 사이에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다시 중국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우울함 속에서 문득 소리질러보고 싶었다. “으아아아! 하고 나를 제약하는 세속적인 것을 모두 벗어나보고 싶었달까, 무슨 스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는 그 촌동네 동네 앞산에 올라가서 소리를 빼애액 질렀다. 그런데 그렇게 일상을 벗어나는 순간 그게 일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마치 시소위에 서 있는데, 가라앉기 싫어서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니 땅바닥을 벗어나면서 다시 땅바닥으로 돌아왔달까.

그래서 어떠한 경험에도 일상을 벗어나는 의미를 부여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내일 전쟁이 터지든, 사후세계를 여행하든, 쥬만지 속에 들어가든, 나는 연속적인 나의 인생속에 있다. 열반은 없다! 여행하는 사람은 절대 낮섦을 기대하고 낮선 의미를 찾지 않도록 해야한다.

이 글을 쓰는 이유..? 지금 나는 내가 쓴 바보같은 글을 고치고 있다. 고치면서 내가 글도 잘 못쓰고, 말도 조리있게 못한다는 걸 다시 곱씹고 있다. 글을 수정하는 데 한계;무능력함을 이렇게 많이 느껴보는 건 이 글을 처음에 썻을 때 이후 두 번째다. 주먹으로 옆에 있는 사람을 쥐어박는다던지 책상을 뒤짚어 엎는다던지, 카페베네 한복판에서 빼애애액 소리지른다던지 하고싶은 건 많지만 하고 나면 그 부끄러움이 내 일상이 되어버린다고 곱씹어보고 있다. 중국에서 그랬듯이…

아무튼 글 다 써야된다. 철학과 4학년생으로서 더 이상 멍청하고, 느려터지고, 비문 투성이인 “불어터진 국수”같은 글은 쓰고싶지 않다.

부끄럽다 부끄러워…

Up in the air…

계속 허공에 붕 뜬 느낌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허공에 붕 떠서 살아가려면 돈이 많아야 된다.

계속 비행기를 타야 되기 때문이다.

만약 돈이 없다면 땅바닥에서 기면서 살아가야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어느정도 형편이 된다면 허공에 붕 떠서 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그건 이카루스의 날개와 같다.

태양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날개가 녹아버리고

마주하는 현실의 땅바닥은 너무 가혹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내가 너무 무섭다.

중국철학과 인문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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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juelo1” by Cornava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빅데이터 및 머신러닝 등 데이터를 다루는 방법이 주목받고 있다. 데이터를 통해 미래에 더 나은 선택지를 제공하거나 더욱 그럴듯한 예측을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데이터는 하나 하나 다른 개별자이며, 그것을 모아 어떠한 보편성을 찾으려고 한다. 우리는 보편적인 기준이라는 매개체 위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판단하고 있다. 심지어 그것이 어떤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하더라도, 그렇기 때문에 일종의 특수성을 갖는다. 개별성조차도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다원주의의 선입견; 현대의 상식 위에서 일치하는 대상은 어찌 보면 특수하지 않아서 특수한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지는 그것에 주목할만한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데이터는 귀납적으로 경험 또는 관찰된 것을 축적한 것이다. 그것이 연역적으로 생각되어 온 것을 종합한 것이라 하더라도 많은 이가 생각한 것을 하나로 종합하면 결국 다른 이가 생각한 것을 내가 재해석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일상의 사소하고 간단한 대화 한 마디도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너 졸업하고 무엇 할 것이냐?’, ‘뭐 대충 계획이 있어.’라는 대답을 듣는다고 해 본다면, 질문은 곧 ‘나는 무엇을 할 지 고민중이야.’로 바꾸어 들을 수도 있으며 후자 또한 다른 의도일 수 있다. 굳이 다른 이가 궁금할 이유가 무엇이며, 대충 계획이 없는 이가 얼마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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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G 6544 My nephew’s dreadlocks – Foto Giovanni Dall’Orto March 2007”
Licensed under Attribution via Wikimedia Commons

인문학적 사유란 막연하다. 답을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느낌적인 느낌’속에 제멋대로 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인간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냐는 말장난으로 치환한다면, 이것은 맞다고 해도 좋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에는 큰 의미가 없다. 말장난으로 들어간다면 인간성의 여집합(비인간적임)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발가벗기는 것, 직시하는 것, 정직하게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려는 것이 아닌가 묻는다면, 이러한 경향이 보편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은 한 쪽을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즐거움을 인간에게 근원적인 것으로 보았고, 비엔나 학파는 관념의 명료화가 철학의 기능이며, 형이상학은 개념의 서정시라고 하였다. 그리고 전통적인 중국 철학은 정신을 드높이는 것이 고차적 가치로 나아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노자는 “학문을 하면 날로 일이 많아지고, 도를 행하면 날로 일이 줄어든다.”라고 말하였다. 당위를 넘어서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은 무위의 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곧 위대해지는 것, 즉 천인합일의 경지에 올라 성인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일정한 말장난의 문제가 생긴다. 불가는 인생은 곧 고통이라고 하였고 도가에서도 ‘삶은 종기이며 죽음은 이 종기를 짜서 없애는 것’이라고 하여 삶의 세속적 가치를 버리는 것에서 이 경지로 가는 길을 찾은 이들도 있으나, 이러한 출세간적 철학과는 반대로 세간적 철학 또한 존재한다. 공자는 ‘삶도 모르는데 어떻게 죽음을 알 수 있을까’라고 하였다. 맹자는 ‘성인은 인륜의 극치’라고 말했는데, 이처럼 성인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한쪽으로 경향성을 띄게 된다. 크게는 출세간적인 철학과 세간적인 철학이 중국 철학 내에서는 서로 부딪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왕필은 공자는 이미 무를 체득하여 그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무를 말하지 않았고, 노자는 아직 무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를 말로 설명하였다고 하며 세간적 철학자로 생각되는 공자에게 출세간적인 의미를 대입한다. 이러한 것은 송나라 때의 신유학 경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풍우란은 중국철학은 이러한 의미에서 세간적이며 곧 출세간적인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고 말한다.  결국 중국철학도 대립하고 서로 다른 경향들의 종합에서 나온다. 시대와 장소는 다르지만 현대의 학문도, 서양철학도, 중국철학도 이러한 경향성에서 본질적으로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대항해 시대에, 볼테르와 프랑수아 케네 등 많은 서양 학자들과 가톨릭 지식인들은 중국에서 종교의 대립이 존재하지 않음을 주목하였다. 이는 유럽의 관용과 계몽의 정신을 낳는 것에 일조하며, 프랑스 혁명 이후의 정치체제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중국철학의 정신을 획득하려고 노력하였고, 그렇게 하였다. 그러나 분명하게 유럽 내에서의 종교간의 대립, 종교와 과학간의 대립의 문제와 같이 중국 철학에서 또한 이러한 대립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고대와 중세에 종교와 학문의 분리는 분명 모호한 문제였고, 종교는 오늘날의 이데올로기와 다르지 않았다. ‘과학은 현대의 종교다.’라는 과학에의 비판은 이러한 지점을 잘 보여준다. 결국 이데올로기의 투쟁은 어디에나 있어왔고, 이는 중국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분서갱유 등, 한 정권이 통치 기조로 어떠한 학문을 받아들이고 다른 학문에 배타적인 스탠스를 갖는 부분은 서양의 종교 갈등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통치의 도구로서의 학문의 속성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것은 필연적인 경향성의 문제이다.

즉, 유럽의 학자들은 중국철학에서 어떠한 대안으로서 중국철학 고유의 인문 정신을 추출해낸 것이 아니라, 그 인문정신은 이미 유럽이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정되어 있었으며, 이것에 힘을 실어주는 수단으로 중국철학이 선택된 부분이 없지 않았나 생각한다.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유학이 다른 학문과 대립하지 않는다는 것은 신유학의 시대에 와서 이미 옳지 않은 사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16-17세기의 가톨릭 학자들도 신유학의 배타성을 알고 공자 유학(Confucianism)에서 그들이 감동 받을만한 중국 철학의 정신을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인문 정신은 곧 시대와 장소에 따라서, 그리고 탐구자의 문제 의식이 무엇인가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주목할 지점이 어디에서 생기는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논쟁점은 항상 논쟁이 일어나는 당시의 현실이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제시하는 질문이다. 이것이 사회 현실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어야 한다는 당위 같은 것은 없다고 본다. 가려운 데를 긁고 싶은 것과 같이 원초적인 질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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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seando en Iporá”. made by tano4595
Licensed under CC BY-SA 3.0 via Wikimedia Commons

그런 의미에서 중국 철학이 오늘날의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되어야 한다. 이는 16-17세기 유럽의 중국학자들이 했던 작업의 연장선 위에 있다. 우리 또한 그들과 마찬가지로 중국 철학에서 쟁점을 찾아 나갈 수 밖에 없다. 이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는데, 오늘날의 세계는 그들이 제시한 관용과 상업 중시의 세계관 위에 있다. 다원주의와 신자유주의가 그것이다. 두 번째로 오늘날 동아시아는 과거와의 거대한 단절 위에 서 있다. 그것은 서양적인 근대화와 공산주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이다. 사족으로, 어떤 의미에서 중국인이 인도의 불교를 받아들인 문제 의식 또한 16-17세기의 서양 중국학자들의 그것과 유사할 것이라 생각한다. 당시 중국에 없고 설명되지 못하던 것에 대해 주목할 부분이 던져졌던 것이다.

또한 우리 개개인이 사는 세계가 확대되어 과거의 동서양 구분은 어느정도 무의미하게 변했다. 과격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는 서양인임을 인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중국 철학은 서양인인 우리가 서양의 세계가 해결해주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답을 가정하고, 그 대안을 과거의 중국 철학에서 찾고 있는 부분이 없지 않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는 모더니즘이 해결하지 못한 인간 소외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조와도 같은 선상에 위치하는 부분이 없지 않다고 본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비인간적, 기계적인 자연성을 인간이 어떻게 인간성으로 통제하는가, 또는 그것에 어떠한 인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가의 문제이다. 이는 곧 천인합일의 문제이다. 여기서 나는 인간성의 반대에 상정되는 자연성 또한 우리의 인간성의 일부라고 주장하겠다. 우리는 스스로 통제 가능하며 곧 통제 불가능한 존재이다. 이는, 하늘과 인간이 닮았음을 이야기하는 중국철학과 맞닿은 부분이기도 하다. 자연 또한 예측 가능하면서 예측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철학의 인문 정신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인간성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사유 전체를 종합하기 위함이다. 이는 개별적인 데이터들의 종합이다. 과거와의 단절을 극복하려는 것은 데이터의 확장이고, 같이 논의되지 못한 것들을 같이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철학의 인문정신은 동서양을 막론한 통섭적인 사고라는 경향성 위에서 생각될 필요가 있고, 이는 동서양을 넘어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신화마저 공부를 할 의의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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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hadow” by Original uploader was Purityofspirit at en.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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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정신이란 이미 답을 내리고 그것을 입증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개별자들을 종합하는 것은 보편을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 보편을 상정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인간은 한계 위에 실존하고 있으며, 그 한계는 우리가 한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있음, 경향 위에 서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에게 <데미안>을 권해주었을 때 그 초등학생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운 것처럼, 우리는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질문조차 할 수 없기에(또는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것 조차 매우 어려운 작업이기에) 일단 뛰어들 수 밖에 없다. 이것은 인간성이라는 보편자를 상정하고 그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인간성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가장 근원적인 것이 된다.

참고서적 : 풍우란, 간명한 중국철학사, 2007, 정인재 옮김, 형설출판사